본문 바로가기

독서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왜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할까? 가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행동에 거대한 하나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존 기계다. 여기서 '우리'란 인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유전자라는 자기복제자를 위한 생존 기계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가 하는 행동의 근거를 유전자의 성공적인 자기복제 시도에서 찾으려 한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행동 근거를 유전자의 이기성이라는 성질로 설명하려 한다.

 

우리가 이성에게 끌리는 기준, 우리가 자신의 집단에 조금 더 관대한 이유 등 우리의 행동 양식은 모두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성에게 끌리는 기준은 이성이 내 자손을 안전하게 키워냄으로써 유전자를 잘 복제할 수 있는가이고, 우리가 자신의 집단에 조금 더 관대한 이유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자기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 양식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함이고 이기적인 행동과 이타적인 행동 모두 유전자의 자기복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설명이다.

 

심지어 리처드 도킨스는 가족관계에서도 '근친도' 개념을 도입해 개체의 유전적 동일성이 높을수록 더 보호해 주려 하는 즉 부모가 자식한테 하는 행동에도 유전자의 자기복제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설명을 내놓는다. 고결해 보이던 가치들과 행동들도 전부 유전자의 자기복제 성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허무주의적 염세관에 빠지는 건 무리도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어떤 근본적인 한 가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리학에서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합하려는 무수한 시도들이 있었듯이 리처드 도킨스도 동물행동학을 지배하는 단 한 가지 원리를 찾고 싶었던 것일 테다. 

 

하지만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일례로 요즈음 유행하는 비혼주의, 낮아지는 출산율이 그 예시이다. 인간이 유전자의 복제를 위한 운반자라면 낮아지는 출산율을 7장 가족 이론의 한정된 자원의 분배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비혼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혼주의는 아예 자기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않으려는 행동인데 비혼주의가 단순히 자원을 한정적으로 가진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꽤 많은 사람에게서 비혼주의의 생각을 가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유전자의 운반자로서의 인간에게선 나오기 힘든 행동양식이다.

 

또 이 책에서 인간은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가 된다. 후반에 나온 '밈'의 개념에서만 봐도 그렇다. 어쩌면 '밈'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우리가 '밈'의 운반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로서의 역할이 강조 돼도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이런 생각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의 방향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요즘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이 많고 공부하고 있던 내게 어쩌면 현재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유전자처럼 인간을 운반자로 하여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즉 AI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어쩌면 인간이 수동적인 입장 일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 이기적 유전자론은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책이다. 인간의 행동을 단 한 가지 원리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 AI를 주체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인간의 행동이 설명가능해진다면 미래를 예측하는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