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은 꽤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선과 악, 신과 인간, 진실과 거짓.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원론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원론적 가치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절대주의 철학이 나오는데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데아론은 세계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 서양의 자연과학은 이 진리의 존재를 탐구하고자 발전하였다.
생물 분류학의 기원은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승이었던 플라톤의 이분법을 처음으로 동물의 분류에 사용한 것이다. 분류학은 그 뿌리부터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근간으로 한다.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생물에게 질서를 부여한다. 급식을 받을 때 일렬로 줄을 서야 하는 것. 어질러진 방을 청소해야 하는 것. 우리는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의 상태로 변화하는 그 과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혼돈의 상태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겠다. 무질서 즉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의 상태로, 분류학은 자연상태에서 질서를 찾아나간다. 어질러진 자연상태를 청소하는 것에 비유를 해볼 수 있겠다.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류학은 직관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느낌이 있다.
이 책의 서술 대상인 데이비드 조던은 자연의 질서를 찾음으로써 진보의 방법이라는 진리를 찾으려 한다. 데이비드 조던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걸 좋아했는데, 밤하늘의 별에게 질서를 부여하고, 지상의 들꽃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그의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혼돈을 거부하는것으로 보인다. 조던의 이런 행동은 주변인들에게 무의미 하거나 소모적인 일이라고 보여졌다. 하지만 루이 아가시를 만난 후 조던이 하던 활동은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활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는 것, 가장 꼭대기에 인간이 있고, 모든 생물을 하등한 생물부터 신성한 생물까지 차례로 배열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신성한 사다리" 개념은 루이 아가시의 신념을 구성했고, 루이 아가시는 생물을 제대로 된 순서로 배열하면 진보할 방법에 관한 실마리까지 알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루이 아가시의 이러한 신념은 다윈의 사상에도 꺾이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다윈의 생각에 반대하며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역겨운" 생각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 점에 대해서는 스승과 의견을 달리한다.
진화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종들 사이의 불확실한 회색 지대를 통해 조던은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조던은 아직 신념을 굽힐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기기만'이 아직은 그를 지배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다만 여기엔 큰 문제가 있다. 조던은 생물에 우열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조던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생물에게서 도덕적 교훈을 찾으려 한다.
자연의 질서 그것은 무엇일까? 세계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즉 무질서해지는 쪽으로 변하려 한다. 이것이 열역학 제 2 법칙 엔트로피 법칙이다. 세계가 무질서해지는 쪽으로 변하는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자연에 질서를 세우는 것은 '인위적인' 현상일 것이다. 질서와 무질서가 인위적이다와 자연스럽다에 대응이 된다. 즉 혼돈의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굉장히 모순적이다. 자연에 인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질서를 찾는다고 과연 자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설령 어떠한 교훈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자연이 준 도덕적 교훈이 과연 맞는가.
시작부터 인위적이었던 조던의 시도는 결국 인위적인 그만의 교훈을 얻게 된다. 멍게를 제멋대로 게으른 물고기로 본 것 기생충을 열등한 종자로 인위적으로 판단한 조던의 시도는 인위적인 자연의 질서를 찾고, 이 속에서 뒤틀린 도덕적 교훈을 얻어낸다.
생물에 우열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조던의 사상은 같은 종인 '인간'에게도 우열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이끌어낸다. 백인과 흑인, 성실함과 나태함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하에 조던은 사람의 성질에 선과 악을 부여하고 악을 제거하려고 한다. 우생학-종의 형질을 인위적으로 육종하여 우수한 종을 만들려는 학문- 조던이 가지고 있던 신념과 그의 일생은 조던을 우생학으로 이끈다.
세계의 진리가 존재할까? 나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것을 찾는 수단인 과학은 비판 가능해야 한다. 의심 가능해야 한다.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별들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었다. 비록 수고스러운 과정일지라도 복잡한 사고를 해야 한다. 우생학은 자기기만으로써 수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줬다. 루이 아가시의 광신도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인 어렸을 적 조던처럼 의심하고 자신이 믿는 세계의 규칙을 부술 줄 알아야 한다. 조던이 평생을 연구해온 '물고기'라고 이름 지은 수중생물들이 사실은 다 같은 종이 아니었던 것처럼,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에는 허점이 있을 수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질서를 찾으려 했던 인간에게 혼돈이 주는 메세지,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고, 의심해야 한다. 과학은 언제나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다. 하늘에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는 그 세계로 가기 위해 우리는 이제 물고기 모양의 해골 열쇠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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